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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effect/未生

미생 - (조금 늦은) 중간 리뷰

 드라마 미생이 어느덧 단 네 편만을 남겨놓고 있다.


 처음 드라마화된다고 했을 때 엄청나게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그만큼의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

실제로 웹툰이 성공적으로 영상화된 것은 솝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의견차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이웃사람과 26년 정도. (더파이브와 이끼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많이 했고, 그나마 성공적으로 영화화된 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데 안 봐서 모르겠음;)

 물론 영화와 드라마가 갖고 있는 고유의 속성, 연출진, 배우의 싱크로율, 배경과 스토리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많이 좌우가 되겠지만 보통은 대개 원작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영상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면 역시 원작 팬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웹툰도 성공했고, 그래서 영상화도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대개 원작자와 제작진은 이런 방향을 최대한 맞추는 데 합의할 것이며, 이것이 영상화의 전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원작자의 지나친 간섭은 독이 될수도 있겠지만.결국 원작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답이 없다. 원작이 낫다, 리메이크가 낫다.. 논쟁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특히 미생의 경우 원작이 갖고 있는 그 무게감으로 인해 정말 말이 많았다. 이 얘기는 각설하고.


 난 미생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특히 많은 우려를 했던 사람이다. 바로 한국 드라마 시장의 고질적인 레퍼토리 때문. 물론 그 레퍼토리가 한국 드라마를 이만큼 발전시키고, 기여했다는 부분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들로 꽉꽉 채워진 상황에서 과연 미생과 같은 작품이 제대로 원작을 잘 살리면서 영상화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의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고, 성장 드라마는 학교에서 연애하고, 주말 드라마는 온 사방에서 연애하는 얘기라고도 하지 않나. 그렇다면 미생의 경우 필시 직장에서 연애하는 얘기가 주가 될 것이 틀림 없었다. 이것은 원작과 전혀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앞서 언급했듯 원작 팬들의 분노를 살 것이 분명했다. 이들이 웹툰 미생에 열광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 이 얘기도 여기까지.


 아직 이를수도 있는 얘기지만, 결론적으로 드라마 미생은 꽤 잘 만들어졌다. 달리 얘기하면 원작을 정말 잘 살렸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일부 요소가 빠지고, 일부 요소가 추가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드라마가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장그래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인물들 모두 마찬가지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이들 모두 미생이다. 완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 지난한 과정의 연속, 오늘 나왔던 대사에 따르면 전쟁터 혹은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를 투영한다.


 누구나 사연은 있다. 지금까지의 미생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도, 1등 사원 안영이도, 마냥 긍정적일 줄 알았던 한석율도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들이다. 성공의 환호도, 벽에 부딪혀 절망할 때도 있다. 이들의 일상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저 옆에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면. 거기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오 차장은 애써 장그래를 채근해야 하고, 한석율은 안영이의 차 한잔 하자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오히려 가장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장그래와 장백기가 술 한 잔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 서로의 시간은 분명히 다르다.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건배나 합시다. 짠. 건배.


 그러나 오 차장의 말에 따르면, 장그래는 어리지만 취해있지 않다. 취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마냥 취해있다고 하면 현실과 이상을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생활이 어려워진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현실이 아닌 판타지다. 13화 말미에 나왔던 장면. 온 세상이 장그래에게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 그렇다. 분명 엄청난 감정이입을 하며 깊게 몰입을 했던 바로 그 장면이지만. 그것은 결국 판타지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않는다. 현실. 현실의 현실. 실제와 분간이 안 가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된 드라마의 한 장면.





 그럼에도, 평범한 이들은 이런 장면에 감동을 받고, 위로를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힘 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미생이 갖고 있는 힘이고, 드라마 미생이 갖고 있는 흡입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얘기는 드라마가 완결되고 나중에 다시. 아무리 귀차니즘에 시달리는 나이지만, 이것만큼은 제대로 한번 남겨봐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



마지막으로 16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취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마시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