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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is in the details

광복 70년, 어쩌다 우리는 ‘헬조선’에 살게 됐나

광복 70년, 어쩌다 우리는 ‘헬조선’에 살게 됐나[민족이 죽어야 나라가] 진짜 해방을 위해 직시해야 할 것
백승덕 / 징병제 연구자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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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18  10: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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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서 해방되던 날, 너나없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던 때가 있었다. 해방만 되면 좁쌀이나 수수 대신에 쌀밥도 먹고 내 땅에서 마음껏 농사도 지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2등 국민이란 설움 없이 제 운명은 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권리도 얻을 줄 알았다. 조선의 해방이 곧 자신의 해방이라고 믿고 기뻐했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광복 70주년을 떠들썩하게 기념하는 오늘, 이 땅은 만세소리 대신에 ‘헬조선’이란 한탄이 들린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우리는 그 긴 시간을 돌아서 어쩌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게 되었을까.

‘헬조선’, 지향 없는 절규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때,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니 종편들이 난리가 났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면서까지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나섰는데 정작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옥이라고 말하니 철이 없다는 것이다. 종편의 단골 패널들은 외국으로 나가봤자 별수 없다고 조언한다. 오히려 세금도 많이 내야하고 총기사고도 난다고 겁박까지 한다. 그들은 좌파 세력이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역사의식을 심어줘서 헬조선 같은 말이 생겼다는 주장도 아무런 근거 없이 내놓는다.

  
▲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순된 화법과 어록은 당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 능력의 근본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종편들이 발끈하고 나서기 전까진 헬조선이란 말이 그렇게 유행했는지 몰랐다. 검색을 해보니 이 말은 2012년께부터 등장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디씨 역사갤러리 등에서 놀던 ‘역덕’들만 쓰던 말이었다. 이들은 한국의 국수주의 역사관을 뒤집어서 조선 왕조의 후진성을 강조할 때 이 말을 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초기엔 헬조선이란 말을 쓰면 자학적이라며 지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 이 말이 대유행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전염사태 등의 사건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이 나라의 후진성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늘어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선 좌우를 막론하고 자국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왔다. 그럴 때 한국은 게으르거나 비합리적인 ‘후진국’으로 그려졌다. 한국의 후진성 반대편엔 미국과 유럽이 모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의 자유와 풍요,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자립 의지, 프랑스의 교양 등등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미국발 근대화론의 영향을 받아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면서 서양사회가 반드시 뒤쫓아 따라잡아야 할 보편적 모델로서 주목 받게 되었다. 서구사회가 간 길대로만 착실하게 따라간다면 한국도 근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 비판적 사회운동 역시 서양사회를 모델로 삶아 한국의 후진성을 공략해왔다. 근래에도 프랑스의 똘레랑스가 주목을 받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북유럽을 모델로 복지국가 담론이 힘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유행하고 있는 헬조선이란 표현은 딱히 뒤쫓고자 하는 모델 없이 그냥 이 땅이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를 돌아보면 전쟁과 테러, 가난과 차별이 세계 도처에 널려있다. 지상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서조차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복지제도에 무임승차한다며 공공연히 백색테러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자본이 고삐 풀린 채 무조건 값싼 노동을 원하는 동안 이주가 더욱 활발해져왔는데, 세계는 그럴수록 딱히 어디가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하기 머쓱할 만큼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외국에 나갔다온 사람들은 한국이 가장 답답하고 살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한다. 세계 어디도 한국만큼 숨 막히게 경쟁을 요구하지도, 아주 잔인하게 사람을 버리지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양적 성장 역시 어느새 정체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은 초국적기업으로 변해서 돈을 벌어도 이 땅에선 일자리를 더 만들지 않고, 부동산은 이미 소수 부유층이 과독점해버린 상태다.

건물주뿐만 아니라 누구나 나이/성별/군경험 등등 가만히 앉아서도 갑질을 할 무언가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의자놀이를 일상적으로 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모두가 지대를 추구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옥이다.

  
▲ '길 건너 헬조선'이란 게임까지 등장했다.

비판을 가로 막은 자리에 훈육만

더 이상 양적성장이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지배자들은 경제개발 5개년 같은 ‘계획’을 제시하는 대신에 밑도 끝도 없이 ‘창조’를 주문하고 있다. 기획자가 아니라 주술자들이 지배하는 시대라 어쩌면 비판이 쉬워졌다. 특히나 이 정부 들어서 사건사고가 잇따라 대형 참사로 이어지다보니 ‘이게 국가냐’란 말이 절로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배자들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진 못해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핑계로 비판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헬조선’이 어떻든 북한보단 낫다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은 그리 많은 말을 할 필요 없이 한국이 분단국가이라는 말 한 마디로 비판세력을 눌러버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참사, 메르스 전염사태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안통인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로 기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배자들은 북한만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데,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다른 기준을 대안으로 제시하기가 곤란한 시대다. 세상은 망해가지만 비판만큼은 막혔다. 그러니 ‘아몰랑’만 남았다.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더라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종북’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은 항상 흐지부지 끝난다. 깊게 생각하는 게 위험한 시대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아몰랑’으로 말을 마치고 만다.

대신, 한국에서는 비판이 막힌 자리를 훈육이 채워버렸다. 국민들은 군사적/경제적 전쟁을 치루기 위한 5분 대기조처럼 훈육될 뿐이다. 유독 한국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까닭도 이와 같은 한국 근대성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의무를 특권으로 바꿔치기한 ‘군사화된 근대성’

재작년 야당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지만, 일제가 조선과 만주에서 벌인 일들은 동아시아 발전 모델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는 근대의 실험실이었기 때문에 모든 근대는 식민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국은 본국에서 하지 못하던 일들을 제약 없이 하려고 식민점령을 한 것이다. 식민지 이후의 지배자들은 식민권력이 식민지에서 실험했던 통치기술을 유용하게 써먹었다.

모든 근대가 식민지 경험이라는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근대성은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발현됐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경우는 냉전질서의 최전선이 돼버린 상황에서 굉장히 강력하게 ‘군사화된 근대성’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 자리 잡은 군사화된 근대성의 가장 큰 특징은 병역과 같은 의무가 특권으로 뒤바뀐 것이다. 한국에서 권리는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발언할 권리가 아니라 국민의 일원으로 속해서 죽을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병역인식은 식민권력이 식민지민들에게 요구했던 바로 그것이다.

일례로, 1942년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은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시행의 의의를 설명하는 담화문에서 식민지민들이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선인에게 병역은 “의무라기보다는 차라리 특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인이 의무를 이행하더라도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식민지민들은 본인들이 짊어져야 할 의무를 경정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국가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일에 고마움까지 느끼라고 요구받았다.

  
▲ 올 들어 가장 폭발적으로 패러디 된 '살려야 한다'는 문구는 대통령의 실수라기 보다는 병영화 된 사회의 한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문구일지도 모른다.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병역을 특권으로 받아들일 것을 다시 한 번 요구받았다. 1949년 국회는 병역법을 제정한 뒤 국민들에게 병역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며 이렇게 알렸다. “국민개병! 국민된 자 내 나라 내 강토를 위하여 내 민족을 위하여 총검을 메고 나설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게 된 권리를 법으로서 약속받을 때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당시의 신문기사들 역시 병역법 제정을 알리며 독자들에게 “징병적령자의 광영”, “자진참가의 영예”나 “대망의 군문은 열리다”라고 설명했다. 해방이 되었지만, 병역을 특권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권력의 방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에서 1차 하청기업 같은 역할을 맡았다. 미국의 관점에서 한국의 군인은 미군을 재체할 유용한 자원이었다. 한국군은 미군에 비해 인건비가 1/8 정도에 불과했고, 한국군이 전쟁 중에 죽더라도 자국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쓸 수 있었다. 한국 정부 역시 군사원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국인들을 미군의 대리물로 제공하고자 애썼다. 한국의 국민들은 시민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값싼 대체제에 불과한 취급을 받은 것이다.

한미 간의 흥정 속에서 한국군의 규모는 괴물처럼 불어났고, 한국전쟁 중에 거의 괴멸되다시피 했던 북한군 역시 대치상황을 핑계로 덩치를 불려나갔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쟁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동안 군부의 권력만 견제 받지 않는 성역이 되어버렸다. 촘스키가 이스라엘을 두고 ‘군대를 가진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가진 군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한국에 더 어울려 보인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커다란 내무반이 됐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화된 근대성 속에서는 오로지 생산만이 개인의 생존을 보장하는 근거다. 개인은 계약을 통한 등가교환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에 대한 처분권을 국가권력에 맡김으로써 삶을 보장 받았다. 이처럼 온 사회가 앞뒤 없이 ‘하면 된다’를 외치는 병영이 돼버린 것이다.

늘 한정적이었던, 허락된 비판…70년이 넘은 숙제

비판이 허락된 범위는 민주화 이후에도 늘 한정적이었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사회는 정치와 군사를 철저하게 분리하기로 합의했다. 군화를 신은 발로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정을 분리한다는 약속은 역설적으로 군과 관련된 일에 정치가 개입하지 못하는 식으로 고착돼버렸다. 안보와 관련한 국책사업에는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일체 허락되지 않을 뿐더러, 그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군화발이 가는 길에 관해서 시민들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식이다.

가장 민주적이었다던 참여정부 역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던 시민들은 군대를 투입해서 연행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동안 병영 폭력으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래도 군 당국은 안보가 중요하다며 군을 흔들지 말라고 한다. 군부의 권력이 견제 받지 않으니 병영 내 성폭력 사건과 방산 비리 문제가 끊일 리 없다. 군사와 관련된 일은 민주적 통제 바깥에 놓인 성역이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성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사이버사령부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어도 국회조차 군대를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 군 당국이 내놓은 자료보다 더 많은 것을 추궁하면 국가안보를 뒤흔드는 ‘종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국가는 이처럼 견제 받지 않는 폭력을 독점한 채 사회 이곳저곳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용산참사에서 볼 수 있었듯 국가는 세입자들의 목숨도 끊어버릴 폭력을 행사하며 개입한다. 이러한 ‘합법적’ 폭력은 건물주의 마음대로 세입자를 내쫓고, 노동자들은 감히 파업하지 못하게 만들고, 약자는 강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웃으며 대응하게 만드는 권력의 원천이다. 이것이 바로 헬조선을 떠받치는 힘이다.

권력을 견제할 여타의 권리는 없이 의무만을 감사히 받아야 하는 처지야말로 식민지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식민지 조선은 해방됐지만 권력은 그때 그 논리 그대로 통치하고 있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모델이 되어줄 곳이 없는 시대다. 우리는 의무를 특권으로 바꿔치기한 저 권력을 직시할 때만 비로소 해방을 모색할 수 있다. 이제 70년이 넘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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