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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is in the details

“그럼에도 도전할 만한 곳, 실리콘밸리"

IT에 관심 있는 사람들 중에서 실리콘밸리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에게 비춰지는 실리콘밸리는 마냥 동경의 대상이고, 내가 넘볼 수 없는 기업들이 즐비한 곳 같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도 사람 사는 동네다. 그리고 꿈을 펼치기 위해 미국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도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모임인 ‘K그룹’ 멤버들이 한국을 찾아 대학생들과 실리콘밸리에 대한 현실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K그룹은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도 도모하는 모임이다. 여느 한인회와 비슷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인 협업과 공유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킹 그룹에 가깝다. 그리고 모임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나 스타트업과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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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영 회장도 현재 핀터레스트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윤 회장은 벌써 올해만 세 번째 한국을 찾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현실과 희망에 대해 수 차례 이야기해 왔다. 그 동안 스타트업이나 관련 업계 사람들과 주로 이야기를 해 왔지만 이번에는 고민 많은 대학생들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 날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뉘었다. 나는 어떻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됐는가, 그리고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업무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다.

강연에 나선 6명의 연사들은 인텔, 고프로, 징가, 어도비, EA 등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건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나’ 그리고 ‘내 일’이었다.

EA에서 UX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이은정 씨는 원래 자연계로 방향을 잡고 공부해 왔지만 20대 중반에 들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가졌다고 한다.

“게임 디자인을 했는데 그 실용 미술의 밑바탕은 결국 순수 미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술보다 창의력과 잠재력을 우선으로 봐주는 캐나다의 미대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실용미술로 돌아와 기기, 소프트웨어가 이용자에게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생각하는 UX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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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중요하지만 그는 애초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걸 따르기보다는 스스로가 뭘 하고 싶은지 그때그때 판단을 잘 내린 쪽에 가깝다. 늘 생각한 목표는 ‘30~40대가 되었을 때 누가 내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하자’였다고 한다. 조금 늦더라도 그 답을 찾자는 것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 온 셈이다.

인텔에서 태블릿 하드웨어 엔지니어를 하다가 스타트업인 실링스로 옮겨 일하고 있는 허린 씨도 마찬가지다. 왜 인텔처럼 좋은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왔나 하는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허린 씨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꿈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성입니다. 그 방향으로 가되 계속해서 길을 수정하고, 없는 길을 만들고 다듬어가다 보면 점점 가까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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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프로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웨어러블 기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동일 대표는 “잘 놀고, 잘 즐기는 것이 에너지”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이따금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 앉아 사람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본다고 한다. 음악과 농구라는 취미는 그에게 사업적 영감을 주기도 하고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얻은 영감과 체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주고,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실리콘밸리로 일과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도비에서 UX디자이너로 일하는 김지영 씨는 정보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해 GM대우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조가 적성에 맞지 않아 삼성SDS로 자리를 옮겼다.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웹페이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게 예쁜 게 전부가 아니라 사용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UX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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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미국으로 넘어가 공부를 하면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문적인 것 외에 실전 경험은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성공대로를 달렸을 리는 없다. 그림 그리는 앱을 하나 만들었는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그게 결국 아이들이 쓰기는 어렵고 성인이 쓰기에는 가벼운 앱으로 남았던 사례도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결국 최근 어도비가 진행하는 마케팅 클라우드, 데이터 비주얼 분야와 잘 맞아떨어진 사례다.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 채워야 할 것들은 어떤 스펙들보다도 용기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런 결단력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도전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현재 그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바로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비자와 영어다.

현재 징가에서 광고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서준용 씨는 미국에서 취업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비자라고 강조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으면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방법은 북미 지역에서 학위를 따거나 북미 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넘어서 국내에서 특정 분야에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고, 그게 그 기업의 수요와 딱 맞는 인재라면 미국에서 머무를 수 있긴 하지만 그런 사례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지사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기 위해 유학을 먼저 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게 꼭 정답은 아니고 정답이 있지도 않다고 한다. 그런 다양한 경험과 사례들이 모여 있고, 그게 잘 용인되는 게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이라는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언어는 가장 중요한 요소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실리콘밸리는 워낙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조금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업무를 정확히 치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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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세금과 집세도 언급했다. 세금이 연봉의 35%가량 되고, 집에 쓰는 것도 25% 정도를 차지한다.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30~40% 수준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높은 연봉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리콘밸리는 도전할만한 곳이다. 이들이 꼽은 가장 큰 포인트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왜?라고 물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한다. 서열이나 수직적 문화가 없기 때문에 왜냐고 물을 수 있고, 그게 업무를 정확히 할 수 있는 기본 요소임은 물론이고, 자기의 생각과 의견이 녹아들어가면서 당위성과 ‘내 일’이라는 책임감도 생긴다.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신입사원이나 10년 일한 직원이나 똑같다.

윤종영 회장은 “다양성이 매우 중요한데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다보니 서비스의 목표나 고객층,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 등 어떤 일에서도 각자의 경험이 쏟아져 나오는 게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건 하루 아침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도 공부라는 길만 정해줄 게 아니라 각자의 능력과 관심을 인정하고 키워주면 다양한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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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한국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현재 실리콘밸리에는 중국과 인도의 인재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많이 나오는 만큼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고, 좋은 문화들을 가져와서 본국에서 꽃피우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것도 누구의 초청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스스로의 휴가를 쓰고 비행기 표를 끊어 한국에 왔다.

“저희가 다시 한국을 찾는 것도 결국 큰 일,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도전하고, 다시 그 경험들이 공유되어서 같이 잘 살 수 있는 순환 구조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실리콘밸리는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부럽다고 생각하는 환경들, 문화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꿈도 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윤종영 회장은 이번 강연 외에도 서울과 실리콘밸리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K그룹이라는 조직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갖고 있는 경험들을 듣고, 알고 싶어하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스토리를 전해주고자 했다. 이미 서울, 부산을 비롯해 전국의 대학들에서 강연을 열었고,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결단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그들에게 내가 묻는 질문도 ‘어떻게 결단을 내렸나’다. 강연은 3시간에 걸쳐 진행됐지만 여섯 연사의 경험이 담긴 ‘내 이야기’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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