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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effect/未生

드라마는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 된다.


드라마 미생이 드디어 완결됐다. 처음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방영 내내 이슈를 만들어내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성공적인 리메이크의 모범 사례로 남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고, 나 역시 그러했다. 미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은 이미 숱하게 열거 되었으니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상대적인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2-30대의 젊은 사람들은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혹자는 젊은 애들이 피해의식에 쩔어 있다고도 한다. 실천은 하지 않고 요구만 한다고도 한다. 사실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은 비단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세대에나, 그룹에나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다. 30대가 됐든 40대가 됐든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유독 2-30대, 특히 20대에게 그런 성토가 모아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만만해서? 오히려 측은해서? 모를 일이다.


그러나 확실히 내 주변의 20대들은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 확언할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한 부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더 친숙해서, 그렇게 그런 친구들과 자주 접하게 된 배경은 있다. 가재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지 않던가.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그런 친구들과 자주 교류하며, 현실을 씹어대고, 미래를 꿈 꾸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현재와 맞대어보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시절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 당시에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었고, 자주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익숙한 환경과,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있었다. 그것이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했을런지는 모르겠다.


철 없던 시절을 모두 보내버린 뒤, 내게도 치열한 삶이 전개되었다. 드라마 속의 장그래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난 부모님이 다 계시고, 나름대로 지역에서 가장 괜찮다고 여겨지는 대학의, 그럭저럭 괜찮은 전공을 삼을 수 있었으며, 누구나 다 그렇듯 놀고 먹기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누리는 대학생 뉴비였으니까. 소위 말하는 '20대 개새끼론'의 전형적인 표본이라 할 만했다. 그 당시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누구나 사연은 있기에. 나만 그런 일을 겪었고 힘들게 살았다는 피해자 행세를 하고 싶지는 않다. 확실한건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런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고, 언젠가는 닥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누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날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거창한 도움이 필요할까? 아니다. 그들도 알고 있고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도움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오히려 진심이 담긴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그들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드라마 미생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통해 보여주는 우리가 속한 세계의 단면. 그것은 우리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창하게 꾸며진 세트나 대사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한 장면들. 그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었고, 함께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드라마 제작진은 원작이 갖고 있는 그 흡입력을 정확하게 캐치해냈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그렇게 구성된 드라마의 완성은 배우들이 해냈다. 누구 하나 따로 언급하기도 쉽지 않고, 잠깐 스쳐 지나갔던 배우 한 명(굳이 주조연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한 명도 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모두가 기여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된 모든 배우들의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내가 이렇게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 바로 내게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집을 떠나 타지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2년, 물론 이 곳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감내했던 2년의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점차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몰랐던 내 자신의 한계와 단점들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좌절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의 부재에 시달린 것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도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친구들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내 주변은 서울에 올라오기 전, 동네 친구들과의 소소한 기억들, 집에 들어가면 항상 그 자리에서 날 맞아주는 가족과, 강아지의 낑낑 대는 소리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힘들다. 솔직히 힘들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편해질텐데. 난 그 모든 힘겨움을 혼자 감내하며, 마음 속에 담아두고 버텨왔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 보이지 않는 미래. 자꾸만 떠오르는 미화된 과거. 난 홀로 갇혀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 미생이라고. 오 차장이 장그래에게 말 했다. 완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고. 현실의 수 많은 미생들이 분명 이 대사 한 마디에 울컥했으리라. 물론 현실에 오 차장 같은 상사가 어디 있으며, 장그래 같은 신입사원이 어디 있겠냐고. 현실에서는 대기업 낙하산에 불과한 장그래. 현실과 판타지는 구분하자는 의견도 분명 일리는 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 드라마의 특별한 부분은 바로 현실과 판타지의 애매한 경계선에 있다. 분명히 드라마로써 온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분명 현실적인 소재에,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대동하고 있다. 장백기의 이직 고민이나 한석율의 상사와의 갈등, 안영이나 선 차장이 겪는 사내 성 차별 문제, 장그래가 갖고 있는 여러 컴플렉스들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 모두 장그래라고, 아직은 미생이라고. 그래서 맘에 와닿는다.


장그래는 결국 원작의 내용처럼 다시 오 차장과 뭉쳤다. 김 대리도 합류했다. 내년에 웹툰 시즌2가 시작될 것이고, 드라마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역시 시즌2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거의 시정사실이다. 1편과 마지막 편의 스토리라인이 절묘하게 이어지는 구성도 정말 좋았다. 역시 1편에서 언급되었던 길에 대한 대사가 다시 흘러나오며, 석양을 등지고 요르단의 사막을 횡단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굿 윌 헌팅'의 엔딩을 연상케 한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장그래와 오 차장. 장그래를 윌 헌팅과, 오 차장을 숀 맥과이어 교수와 매치시켜도 크게 위화감은 없을 것 같다. 결국 우리네 일생은 거의 비슷비슷한 것. 우리 모두 미생이다. 다시 되새긴다.


드라마를 통해서도 이런 감동을 느낄진대, 가장 가까운 곳에 따뜻한 위로를 전할 이가 있다면, 그런 이와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전하고 싶다. 마지막에 장그래가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건은 충분히 조성된 것.


그렇게 삶은 다시

이어진다.






덧. 마지막 장그래와 오 차장의 장례식 장면은 개인적으로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드라마의 전체 스토리를 크게 뒤흔들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덧2. 케이블 드라마, 특히 tvN이 강세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보는 편이 아님에도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올해 초 식샤를 합시다, 드라마 미생까지.. 너무나 재밌게 봤다. 


덧3. 한석율 역의 변요한에게서 소싯적의 히스 레저가 연상되었다고 하면 좀 오바인가; 암튼 뭔가 대단히 인상적인 캐릭터였고, 배우였다.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독립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다.


덧4. 강소라는 이 드라마의 홍일점에 가까웠고, 그만큼 돋보였어야 하는 배역인데 첫 등장씬(;;) 외에 사실 그러질 못 했다는 게 함정.. 이 드라마가 여러모로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본다.


덧5. 임시완은 아예 이 참에 배우로 전업하라 (...)


덧6. http://twitter.com/dhtkdyl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