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 진실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어제(22일) 오전 별세하셨다. 사인은 노환.

오만풍파로 얼룩진 격동의 현대사의 산증인이며, 때문에 당시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을 최 전 대통령.
난 개인적으로 이 분의 사망 소식이 그래서 안타깝다. 관련 기사 타이틀도 대개 보면 ..


격동기 ‘비운의 대통령’ 최규하
끝내 침묵 지키다 떠난 '신군부 목격자'
신군부에 휘둘린 ''최단명 대통령''
무덤까지 갖고 간 비밀들
검찰ㆍ법원도 못 푼 최 전 대통령 '비밀'
12·12→하야' 생전 내내 침묵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8-90년대까지의 역사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가.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
그리고 특히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80년대가 그렇다.

79년 10월 26일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 [10ㆍ26 사태]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피선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 취임
80년   8월 16일 대통령직 사임

이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의 당시 행적.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의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
이 수식어만으로도 그가 당시 얼마나 안타까운 삶을 살았는지 느껴지지 않는가.
단지 격동의 시기를 살다 갔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뭔가 좀 모자란 감이 있다. 특히나 이 분의 재임 중 있었던 여러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광주에서 일어난 엄연한 '민주화 운동'
하지만 당시 전두환이 신군부는 이를 '폭도들의 테러' 로 규정짓고 공수부대를 출동시켜 무참히 시민들을 짓밟고 학살. 천수를 다 누리고 간 놈들을 제외한 전두환이를 비롯한 당시의 윗대가리들은 아직까지 두 눈 훤하니 뜨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현재.
한동안 역사 교과서에 '광주 사태' 로 표현되어 있었던 바로 이 사건.

그리고 이 기간동안 명목상으로나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국군 통수권자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
그리고 불과 3개월 후인 8월 16일 대통령직 사임.

뭔가 비린내가 나지 않는지?


언론에서 지금 옳다꾸나 하고 달려들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5ㆍ18 이다. 아직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며, 어제로 서거한 최 전 대통령은 이 시기 국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 사실 기사 내용이나 본인이 말 하는 것이나 추측성이 강하지만,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분은 뭔가 알고 있었다. 라고

그는 이후 본인에게 쏟아진 여러 질문과 의문을 다 피해갔으며, 그 무엇 하나 속시원히 밝힌 것이 없다. 때문에 이 분을 '전두환과 같은 선상의 사람' 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 분은, '피해자' 다.
정말 상투적인 얘기지만, 나나 당신이라도, 그 당시 이런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역사에 '만약' 이란 정말 무의미한 것이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


관련 비망록이나 개인적 메모에 관한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는 꼭 좀 그런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밝혀져야 할 것은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 중 하나.
대한민국의 80년대란 정말 안타깝고 슬픈 역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는 꼭 바로 검증되어야 한다.
검증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본인이 눈을 감을때까지 그렇게 함구했어야 할,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고 싶은 소망이 또한 있다.
그 이유에서 비린내가 풍기든, 향기가 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역사와 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별세  (0) 2012.08.03
5.18  (0) 2012.05.18
19대 총선 전국 야권단일후보 명단  (0) 2012.04.08
MBC의 눈물  (0) 2012.03.01
강풀 '26년'  (4) 2006.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