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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is in the details

'마스크 대란'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 현 주소

'마스크 대란'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 현 주소

헤럴드경제 | 입력 2015.06.10. 12:16 | 수정 2015.06.10. 12:18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우려로 이른바 ‘마스크 사회’가 도래한 가운데 마스크를 둘러싼 사회 주체들의 갖가지 행태가 우리 사회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마스크와 관련한 각종 소동 국면에서 한국 사회의 경제, 정치, 심리, 사회학적 특성이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마스크 테마주’ 주식 시장 출렁= 올해는 최악의 황사, 미세먼지에다 메르스 사태까지 한국을 덮치면서 마스크 매출이 급증했다.

메르스 사태가 본격 불거진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7일까지 약 2주 남짓 기간에 황사 마스크 판매는 직전 2주간 대비 30배 가량 증가했다(G마켓).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일주일간 지하철 역사 내 편의점 마스크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약 20배 늘었다(세븐일레븐).

그러면서 국내 주식 시장에는 어김없이 ‘메르스 테마주’가 등장해 급등과 급락을 반복했고, 한국 자본시장이 투자가 아닌 투기의 장(場)으로 변질됐다는 오랜 전통을 몸소 보여줬다.

메르스 사태로 지난달 말 이래 주가가 크게 뛴 한 마스크 원단 생산 업체의 최대주주는 갑작스레 지분을 대량 매각, 총 76억이 넘는 차익을 챙기기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마스크 구매력을 놓고 ‘빈부격차’의 양상까지 나타났다.

충남에서 상경해 서울 고시원에서 생활한다는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인터넷을 통해 감염 예방 성능이 좋다는 KF80, KF94 마스크를 구매하려 했지만 20개, 30개씩 묶어 팔아 가격이 부담이었다”면서 “면 마스크 하나를 사서 매일 빨아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학…마스크 필요없다더니 ‘표리부동’=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정부와 여당은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특히 정부에 대한 비판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세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문 장관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메르스 감염 우려로 시중의 마스크 등이 동이 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굳이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정작 문 장관 본인은 지난달 23일 메르스 검역 상황 점검 차 인천공항 방문했을 당시 방역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사진이 드러나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트위터 상에서는 ‘나만 살면 되는 고위 공무원의 클래스(@min*****)’, ‘문형표는 마스크도 쓸 필요 없댔죠. 유언비어 유포자, 공포 조장자는 박 정부잖아(@hal*****)’ 등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상당수 국민들 사이에서 문 장관의 마스크 사진은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의 공식 발표를 곧이곧대로 듣지 말아야 주요 근거처럼 여겨지게 됐다.

▶심리학…세월호 ‘학습효과’ 각자도생= 국민들 사이에서 마스크는 그 성능이 좋을수록,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희귀품’이 되어버린 상태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만 권장되고, 실제 착용 시에는 쉼 쉬기조차 버거운 N95(미세입자 차단율 95%) 마스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나오는 족족 매진되고 있다.

경기 일산의 한 약사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아버지는 하루에만 2∼3번씩 약국을 왔다갔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아내가 ‘이 마스크가 아니다. 최소 KF80 수준 이상의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며 “정부 발표와 무관하게 성능 좋은 마스크를 챙겨주는 게 자식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함께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높아져 사회적인 불안감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세월호 참사의 키워드가 됐다는 결론을 내린 국민들은 ‘정부와 공식 발표은 일단 의심하자’는 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메르스 관련 병원 명단의 뒤늦은 공개, 3차 감염자는 없다는 정부의 확언이 뒤집히는 등 일련의 과정이 불신의 싹에 거름을 준 격이 됐다.

▶사회학…마스크 쓴다며 ‘핀잔’하는 무례= 마스크 착용을 두고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마스크를 쓰면 ‘오버한다’고 쳐다보는 분위기에 착용을 주저하게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속속 터져나오고 있다.

며칠 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한 마트에 들렸다는 A씨는 계산대 앞에서 초면의 다른 여성으로부터 “왜 굳이 마스크하느냐,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었다며 황당해했다.

A씨는 “그럼, 마스크를 벗고 기침을 하고 다니면 좋으시겠냐”고 대꾸했다면서도, 감염을 막기 위해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행동이 왜 이런 타박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B씨는 “마스크를 쓰면 손님들이 불쾌감을 느낄 것”이라는 매니저의 말에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B씨는 “나라면 아르바이트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것을 보고 위생 관리에 철저한 곳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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