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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is in the details

[도유진의 디지털노마드] 출발

전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직접 다큐멘터리로 담는 작업을 진행 중인 도유진 씨 이야기를 <블로터>가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_편집자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똑같은 옷을 입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은 도시로 자꾸만 몰려들고, 물리적으로 한 장소에 얽매여 인생의 대부분을 특정 도시에서 보낸다.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만 여기고 있는 이런 삶의 모습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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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다. 정보기술은 급속히 발전하고, 기업 문화도 바뀌었다. 이에 힘입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코딩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킥스타터 대신 내 웹사이트를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펀딩을 시작한 첫 달에 1만달러를 모았다. <포브스>에 인터뷰가 실리고, <블로터>에서도 내 횡설수설을 멋지게 기사로 만들어 주었다. 전세계 이곳 저곳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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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이 처음인 한 아시아 여자아이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을까? 바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 이것이 충분히 실현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이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다큐멘터리는 처음이라는 점 때문이 아닐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솔직히 나도 얼떨떨하다. :)

<블로터>를 통해 올 한 해 이 프로젝트의 좌충우돌 진행 상황을 글과 짧은 영상으로 조금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첫 순서는 디지털 노마디즘이 대두된 배경과 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더 이상 꿈이 아닌 ‘디지털 유목민’의 삶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첨단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반드시 고정된 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원격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물리적인 족쇄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팔고 단순한 자기만족을 위해 소비하고 쌓아 두었던 물건들을 처분한 뒤, 수트케이스와 배낭을 들고 지구 구석구석으로 삶의 반경을 넓혀 나가고 있다.

아무 곳에서나 일해도 된다면, 왜 굳이 이 복잡하고 생활비도 비싼 도시에서 평생 주택 대출 이자를 갚으며 살아야 할까. 콜롬비아로, 프랑스로, 태국으로 갈 테야! 이들에겐 가는 모든 곳이 집이자 일터다. 이들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 이외에 불필요한 소비는 철저히 지양하는 미니멀리스트다. 대개는 한 장소에서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씩 머무르는 느린 여행을 선호한다.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39%의 미국 회사가 직원들에게 원격근무를 허용한다. 스탠포드대 연구 결과는 또 어떤가. 원격근무자들의 생산성이 13% 가량 높단다.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 일과 삶 간의 균형, 자기발전,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한 가치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 고용주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사무 공간과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며,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을 때 업무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 여러 연구 결과와 실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참조: State of The Gobal Workplace, 갤럽 2013)
  • 인구밀도가 높은 혼잡한 도시보다는 단순히 장소를 옮김으로써 같은 소득, 또는 더 낮은 소득으로도 질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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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르게 자리잡는 디지털 노마드 관련 산업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노마드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도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일하고 사무실로 활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일종의 간이 공동 사무실을 제공하는 협업 공간이 도시마다 생겨났다. 디지털 유목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노마드 리스트‘,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검색엔진을 표방하고 나선 ‘텔레포트‘ 등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텔레포트는 지난 9월 실리콘밸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유수 벤처캐피탈 안드레센 호로위츠로부터 250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하여, 안드레센 홀로위츠도 5월에 인터뷰한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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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근무 생산성도 높아…몰리는 인재들

디지털 노마드들은 교통 혼잡 같은 각종 불편을 감수하며 반드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더 높은 생산성과 더 창의적인 결과물, 그리고 더 만족스러운 삶의 질을 근거로 들어 정면 반박한다(참조 : 20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타트업을 시작한 디지털 노마드 이야기).

원격근무는 더 이상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원격근무를 허용하는 회사의 채용 공고만 한자리에 모아놓은 ‘리모트 OK’는 매달 수십만명에 가까운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블로그 플랫폼 ‘워드프레스‘의 개발사인 오토매틱은 전직원에게 원격근무를 허용하면서 어느 경쟁사에도 뒤처지지 않는 성과를 자랑하며 디지털 노마드들의 꿈의 직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오토매틱 직원들의 현재 위치를 볼 수 있는 지도.

오토매틱 직원들의 현재 위치를 볼 수 있는 지도.

디지털 노마디즘이 2014년 중반을 기점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2015년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들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에선 디지털 노마디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고, 30여명의 디지털 노마드가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함께 여행하고 일을 하는 ‘해커 파라다이스’, 100여 명의 디지털 노마드가 1여년에 걸쳐 전세계를 누비는 ‘리모트 이어’, 8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제1회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2015년은 디지털 노마드의 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껏 블로그를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나눠오던 내가 올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좀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콘텐츠 형태에 고민하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모습을 직접 담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보다 나은 삶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분명 영상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

디지털 노마디즘의 갈라파고스, 대한민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디지털 노마디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고, 관련 서적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이 전지구적인 담론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나라인데도 그렇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자원 부족, 교통 혼잡, 치안,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상승과 같은 문제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드는 데서 발생한다. 거기다 이미 깨진 지 오래인 일과 삶의 균형은 일반상식이 된 지 오래인데도, 아직도 국내에서 디지털 노마디즘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왜 그럴까? 이 글 마지막의 영상에서 확인하시라.) 

‘라이프 스타일 코치’라 불리는 ‘사짜’님들

디지털 노마드가 소위 ‘핫한’ 아이템으로 등극하면서, 아름다운 해변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일하는 비현실적 사진을 여러 매체들이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따라하진 마시라. 노트북이 망가질 뿐더러, 어쩌면 그 전에 당신의 소중한 손목과 어깨부터 망가질 테니.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법을 알려주마, 그러니까 내 이북과 온라인 동영상 강좌를 사라’는 일명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 스타일 코치들도 이때다 하고 영업을 개시했다. 가르쳐주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물리적인 장소에 대한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밥 먹고 사는 건데. 역시 어느 곳이나 초기에는 돈냄새를 맡고 ‘사짜’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이런 걸 보시면 혹하지 마시고 소금 뿌리고 창 닫으시기 바란다. “난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너보다 잘나고 쿨한 사람이야”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면서 온갖 장소에 얹어 둔 맥북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에게도 소금 팍팍 뿌리시기 바란다. (참조 : Let’s stop selling the digital nomad lifestyle as a miracle cure and instead expose its reality)

원 웨이 티켓

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모두가 여행을 떠나야 한다’거나 ‘이것이 훨씬 더 멋지고, 더 좋고, 더 폼나는 삶의 모습이다’ 같은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다. 삶의 방식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과연 현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정말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고수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건 사실이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여러 다른 삶의 방식들 중 하나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전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들과, 변하는 기업문화와 노동 환경 같이 디지털 노마디즘을 촉진시키는 각종 사회 현상들을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담을 생각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2016년 상반기께 ‘원 웨이 티켓’을 배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글 자막도 함께 배포할 예정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한 것 같지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독자분들도 함께 지켜봐 주시면 정말 매우 많이 감사드리겠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제작비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니 후원은 더더욱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갈 길이 아주 멀다.

서울에서 촬영해 온, 박미영·전제우 부부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들이 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는지, 반대하는 부모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 들어보자. 다음 편에는 발리 이야기를 들고 오겠다. 행운을 빌어주세요~! ;-)


http://www.bloter.net/archives/226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