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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Food

Boyhood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두 가지에 흥미가 생겨 보게 됐다. 하나는 해외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4 베스트 영화 중 순위권에 포함되었다는 점과, 두 번째는 비포 시리즈의 그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더불어 영화의 제목인 '보이후드'도 최근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있는 나의 눈길을 끄는 데 역시 한 몫 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의 유년시절에서 시작하여 그의 성장기를 쭈욱 보여주는 내용이 전부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플롯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연출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실제 12년의 시간을 두고 그동안 변화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즉 영화 자체는 연출된 것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주인공의 성장과정이다. 유독 같은 아역배우임에도 동양에 비해 서양의 경우 다소 많이 바뀌는 외양으로 인해(소위 '역변'이라 부르는..) 농담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보이후드의 주인공의 경우, 그럭저럭 선방했다고 본다. 하지만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마스크의 꼬마애가 나중에는 잔뜩 자란 수염에, 간혹 보여주는 일탈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 역시 성장한다. 혹은 변화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서글펐던 변화는 주인공의 친부로 등장하는 에단 호크다. 이제는 완전히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이지만,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모습만 해도 그렇게 늙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12년의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늙어버린 그의 모습은, 사실 잘 늙었다. 멋지게 늙었다. 특히나 영화 속 그의 아버지 캐릭터는 내가 지향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었다. 능력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항상 자신만만하고,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메디슨 시니어라는 캐릭터는 딱 나의 유년 시절의 우리 아버지의 그것과 같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정말 이뻐라 했다. 잘 놀아주고, 항상 맛난 것 먹이려고 하고, 선물도 사다주고, 틈만 나면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다만 그랬던 기억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 했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많이 다니고, 중간에 삐뚤어지기도 하고, 갈등도 하고, 고민도 하는 모습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지금 생각컨대 나의 유년 시절은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다. 다만 저번에도 언급했듯, 그 당시에는 그걸 모르는 것이지. 그리고 이건 아마 대부분의 성장 과정을 지나온 어른의 위치에 도달한(여기에서 말하는 어른이란 단순히 겉모습이 아닌, 생물학적인 성장이 아닌, 정신적인 성숙의 단계에 다다른 이들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거기에 몸을 맡긴 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의 변화 외에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애플의 전자 기기들이 등장하는 것도 재밌고, 어린 시절 주인공과 친구들이 노는 모습에서 우리나 외국이나 크게 다를 건 없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다만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면서도 그렇게 만나는, 혹은 맺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면 확실히 정서적인 차이도 있다. 비포 시리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주가 되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마지막에 주인공과 새로 알게 된 여자친구와의 대화로 영화는 갑작스레 끝이 난다.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수도..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할 것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거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웃음)